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구치 쓰토무 (문단 편집) == 나가사키 원폭 투하 == 그의 고향은 [[나가사키]]였다. 거기에 그의 부인과 아이가 살고 있었고 회사도 거기 있었다. 그는 8일 아침 도착했다. 사토와 이와나가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야마구치는 그날 아침 [[병원]]에 갔다. 담당 의사가 그의 학교 동창이었지만 그의 [[화상]]이 너무 심해 처음에는 동창인지 알아보지 못 했다고 한다. 그의 어머니 역시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아니냐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. [[8월 9일]] 아침 그는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로 출근했다. 얼굴을 [[붕대]]로 감싼 상태였다. [[엔지니어]]들을 히로시마로 파견한 과장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. 11시 2분경 과장은 화가 났다. "단 하나의 폭탄이 도시 전체를 파괴할 수는 없어! 자네가 확실히 심하게 다쳤고 약간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." 그래서 그가 과장에게 추가적으로 설명을 하려 했다. 그 순간 그는 다시 [[팻 맨|섬광]]을 보고 반사적으로 엎드렸다. 과장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. 그는 원폭의 섬광, 폭풍, [[버섯구름]]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[[귀신]]인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. 회사가 폭심지에서 '''또''' 3km 거리에 있었다. 두번다 맞고 살아난 것도 기적인데 두번다 3km 남짓 떨어져 있었다는 우연까지 겹친 셈이다.[* 사실 미쓰비시 조선소는 나가사키의 핵심 군사시설로, 나가사키 원도심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그가 재직한 조선소는 원폭의 목표 그 자체였다. 어떤 의미로는 그 조선소 때문에 나가사키가 원폭의 표적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. 그러나 당일 기상 문제로 원폭 투하가 당초 예정지에서 북서쪽으로 3km 정도 어긋났고, [[산]]이 많은 나가사키에서 폭압이 넓게 퍼지지 않아 조선소는 몰살을 면했다.] 직접적으로 다치지는 않았지만 폭풍으로 인해 붕대가 벗겨지면서 화상을 입은 자리가 노출되었다. 그래서 [[고열]]과 [[구토]]로 인해 몇주간 고생했다. 가족들은 [[방공호]]로 잘 대피해서 모두 무사했다. 히로시마에서 남편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들은 아내가 화상 연고를 마련해놓고 대피했기 때문이다. 한편 사토와 이와나가는 좀 더 운이 좋았다. 사토는 그 시간에 폭심지에서 좀 더 떨어진 나가사키 야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. 그 날 오전 중 직원들이 사토에게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 있던 중 섬광을 보았다. 원폭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물에 뛰어들었다. 사토는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안전하게 구조되었다. 이와나가는 그 시간 [[전철]]을 타고 있다가 창문을 통해 섬광을 보았지만 전혀 다치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